이번에 다룰 시는 김수영 시인의 '미농인찰지'입니다. '미농인찰지'는 그 당시 미대사관에서 쓰는 타이프 용지로 값비싼 용지입니다. 시적 화자는 바다 근처에 사는 매부의 환대를 받고 돌아와 매부에게 감사 편지를 준비하며 식모에게 고급 용지인 '미농인찰지'를 사오라고 했지만 식모가 사온 것은 값싼 '밀용인찰지'였습니다. 그 후 화자는 어떻게 행동하는지를 지켜보며 작품을 감상한 후 해석을 통해 학습해보도록 합시다.
우리 동네엔 미대사관에서 쓰는 타이프 용지가 없다우
편지를 쓰려고 그걸 사오라니까 밀용인찰지를 사왔드라우
(밀용인찰지인지 밀양인찰지인지 미룡인찰지인지
사전을 찾아보아도 없드라우)
편지지뿐만 아니라 봉투도 마찬가지지 밀용지 넉 장에
봉투 두 장을 4원에 사가지고 왔으니 알지 않겠소
이것이 편지를 쓰다 만 내력이오- 꽉 막히는구려
꽉 막히는 이것이 나의 생활의 자연의 시초요
바다와 별장과 용솟음치는 파도와 조니 워커와
조크와 미인과 페티 김과 애교와 호담(豪談)과
남자와 포부의 미련에 대한
편지는 못 쓰겠소 매부 돌아오는 길에
차창에서 내다본 중앙선의 복선공사에 동원된
갈대보다 더 약한 소년들과 부녀자들의
노동의 참경(慘景)에 대한 편지도 못 쓰겠소 매부
이 인찰지와 이 봉투지로는 편지를 못 쓰겠소
더위도 가시고 오늘은 하루종일 일도
안하고 있지만 밀용인찰지의 나의 생활을
당신한테 보일 수는 없소 이제는
편지를 안해도 한 거나 다름없고 나는
조금도 마인하지 않소 매부의 태산같은
친철과 친절의 압력에 대해서 미안하지 않소
당신이 사준 북어와 오징어와 2등차표와
경포대의 선물과 도리스 위스키와 라스베리 잼에 대해서
미안하지 않소 당신의 모든 행복과 우리들의 바닷가의
행복의 모든 추억에 대해서 미안하지 않소
살아 있던 시간에 대해서 미안하지 않소
나와 나의 아내와 우리집의 온 가옥의 무게를 다 합해서
밀양에서 온 식모의 소박과 원한까지를 다 합해서
미안하지 않소-만 다만 식모를 부르는 소리가
좀 단호해졌을 뿐이오 미안할 정도로 좀-
-김수영, 「미농인찰지」
시를 읽어보면 이 시는 화자가 매부에게 말을 건네는 듯한 어조로 시가 전개되는데요. 화자는 식모에게 '미농인찰지'를 사오라고 했지만 '밀용인찰지'를 사왔기 때문에 매부에게 편지를 쓰지 못하겠다고 합니다. 이는 '미농인찰지'와 같은 고급용지를 팔지 않는 자신의 동네나 싼 편지지로 편지를 쓰면 자신의 생활수준이 잘사는 매부와 비교될까봐를 걱정하는 화자의 속물성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이런 상황에서 화자는 '꽉-막힌다고'하며 그 상황에서 느끼는 답답함을 표현합니다.
그리고 이 꽉막히는 마음이 2연에 이어져서 바다, 별장, 용솟음치는 파도, 조니워커와 같이 매부에게 대접받았던 것들을 나열하는 데 이는 속세의 물질들로 나중을 보면 이런 물질을 대접받은 것에 대해 화자는 은근히 압력을 느끼고 있으며 자신의 생활 수준과 비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와 반대되는 노동의 참경 등에 대해서도 이야기하지만 둘다 편지에는 못쓴다고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3연에서는 이러한 마음을 '나의 생활을 당신에게 보일 수 없다'며 자신의 속물적인 모습을 확인합니다. 그리고 이제 '미안하지 않소'가 반복되는데요. 화자가 '매부의 태산같은 친절과 친절의 압력'이라고 표현한 것으로 봐서 자신과 비교되는 매부의 재력에 대해 은근히 신경쓰고 있었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매부가 나쁜 것은 아닙니다. 매부는 자신이 가진걸 주었지만 화자는 그냥 고마워하면 되지만 스스로 자신과 비교해서 압력을 느낀 것입니다) 그래서 괜히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있던 것을 '미안하지 않소'라고 표현하며 스스로에 대해 성찰하고 있습니다.
4연에서는 화자가 압력을 느꼈던 속물적인 대상들에 대해 나열하며 이를 부정합니다. '미안하지 않소'라고 하며 자신의 속물성을 반성하는 것이죠. 그리고 다만 자신이 식모를 부르는 소리가 좀 단호해진 것이 미안할 정도라며 자신의 부정적인 모습을 성찰하며 시를 마무리합니다.
이렇게 이 시는 '미농인찰지'가 없어서 감싼 '밀용인찰지'로는 감사편지를 쓰지 못하는 화자의 속물적인 모습과 이에 대한 성찰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럼 이제 전문해석을 통해 다시 한번 학습해보도록 합시다.


오늘도 수고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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