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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한 사람의 임종을 지키는 것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그만큼 마지막 순간은 소중하니까요. 그러기에 그 마지막 순간은 더욱 애틋한 법이죠. 이번에 다룰 시 '풀벌레 소리 가득 차 있었다'는 이러한 마지막 임종의 순간을 다루고 있습니다. 하지만, 시에서 임종의 순간은 비극적입니다. 바로 낯선 땅에서 침대도 없는 누추한 공간에서 맞는 임종이니까요. 그럼 내용 설명을 들어보도록 합시다.

시의 상황은 아버지가 임종을 맞는 상황입니다. 당연히 화자의 정서는 슬픔이겠죠. 포인트는 임종의 장소입니다. '우리집도 아니고 친척집도 아니고 고향도 아닌' 낯선 곳에서의 임종입니다. 지금이야 덜하지만 예전에는 고향이 주는 의미가 엄청났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결국엔 고향땅에 돌아가서 그곳에서 마지막을 보내고 그 땅에 묻히고 싶어했죠. 하지만 시에서 화자의 아버지는 정말 머나먼 낯선 땅에서 침대도 없을 만큼 누추한 곳에서 임종을 맞고 있습니다. 그 밤에 풀벌레 소리가 가득 찼던 그 날의 밤. 아버지가 임종을 맞는 밤에 느끼는 감정을 노래하고 있는 것이죠.

감상하실 때 주의할 점은 분명 비극적인 상황이지만 화자의 정서가 도드라지기 보다는 객관적인 느낌입니다. 왜 그런가를 생각하면서 감상하시고, 이후 전문해석을 통해 이유를 알아보고 쓰인 표현법을 공부하면 되겠습니다:)


우리 집도 아니고

일가 집도 아닌 집

고향은 더욱 아닌 곳에서

아버지의 침상(寢床) 없는 최후(最後) 최후의 밤은

풀벌레 소리 가득 차 있었다

 

노령(露領)을 다니면서까지

애써 자래운 아들과 딸에게

한 마디 남겨 두는 말도 없었고,

아무을 만(灣)의 파선도

설룽한 니코리스크의 밤도 완전히 잊으셨다

목침을 반듯이 벤 채

 

다시 뜨시잖는 두 눈에

피지 못한 꿈의 꽃봉오리가 갈앉고

얼음장에 누우신 듯 손발은 식어 갈 뿐

입술은 심장의 영원한 정지(停止)를 가리켰다

때늦은 의원(醫員)이 아모 말없이 돌아간 뒤

이웃 늙은이의 손으로

눈빛 미명은 고요히

낯을 덮었다

 

우리는 머리맡에 엎디어

있는 대로의 울음을 다아 울었고

아버지의 침상 없는 최후 최후의 밤은

풀벌레 소리 가득 차 있었다.

 

 

- 이용악, 「풀벌레 소리 가득 차 있었다」

 

오늘도 수고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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