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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지러운 도시를 떠나 자연 속에서 사는 삶. 자연이 주는 평안 속에서 사는 삶. 낭만적이고 멋진 것 같지만 현대인들에게 도시를 떠나 산다는 건 생각보다 어려운 일입니다. 이번에 다룰 시 '길의 노래'에서는 마음은 자연은 향하지만 세속(도시)을 떠나지 못해 주저하고 있는 화자의 마음이 드러납니다.


내 마지막으로 들 집이 비옷나무 우거진 기슭산 아니면 또 어디이겠는가

연지새 짝지어 하늘 날다가 깃털 하나 떨어뜨린 곳

어욱새 속새 덮인 흙산 아니고 또 어디이겠는가

마음은 늘 욕심 많은 몸을 꾸짖어도

몸은 제 길들여 온 욕심 한 가닥도 놓지 않고 붙든다

도시 사람들 두릅나무 베어 내고 그곳에 채색된 단청(丹靑) 올려서

다람쥐 들쥐들 제 짧은 잠, 추운 꿈 꿀 혈거(穴居)마저 줄어든다

 

먼 곳으로 갈수록 햇빛도 더 멀리 따라와

내 여린 어깨를 토닥이는 걸 보면

내 어제 분필과 칠판 앞에서만 열렬했던 말들이

가시 되어 일어선다

 

산골 처녀야, 눈 시린 십자수(十字繡) 그만두고

여치 메뚜기 날개 접은 들판의 콩밭 누렁잎 보아라

길 끝에 무지가 차라리 편안인 산들이 누워 있고

산 끝에 예지도 거추장스러워 피라미들에게 맡겨 버린

물이 마음 풀고 흐르고 있다

 

내 이 길 억새 속으로 걸어가면

배춧잎 같은 정맥 돋은 손을 쉬고

늘 내일로만 가는 신발을 벗어 한 사흘 나뭇가지에 걸어 둘 수 있을까

내 늑골 밑에서 보채던 달력과 일과표와

눈 닿으면 풍금 소리를 내며 일어서던 글자들도

등 두드려 한 열흘 잠재울 수 있을까

 

먼저 간 발자국들이 내 발길에 지워지고

내 발자국 또한 뒤이은 발길에 이내 지워지고 말

한쪽 끝에는 대구(大邱)*를 달고 다른 쪽에는 은해사(銀海寺)

솔바람 소리를 달고 있는 길

 

-이기철, 「길의 노래」

* 대구: 경상북도에 있는 대도시.


 

화자는 지금 '대구'와 '은혜사 솔바람 소리'가 양쪽 놓여 있는 길입니다. 화자는 자신이 마지막으로 들 집이 기슭산이라고 생각하는 것으로 봐 자연의 가치를 알고 있는 인물입니다. 무위한 자연이 주는 편안함을 아는 인물이죠. 하지만 세속적인 욕심을 도시의 삶을 놓지 못해서 그 사이에서 고민하고 있습니다. 도시 사람들이 산 속으로 들어와 나무를 베고 건물을 올려 산 마저도 인위적인 건물이 올라가는 시대.(1연) 화자는 마음과는 달리 세속적인 삶을 살아가는 자신을 보며 자신이 했던 말을 생각하고 자신에 대해 반성합니다. (2연) 그리고 자연 만을 보는 태도를 생각하며(3연) 억새 속(무위한 자연)으로 걸어가면 세속적이고 인위적인 삶을 벗어날 수 있을까 생각합니다(4연) 이렇게 생각하면서도 화자는 세속적인 도시세계를 쉽게 벗어나지 못합니다. '대구'와 '은혜사 솔바람 소리'를 양쪽에 달고 있는 길은 이렇게 위한 자연의 세계에서 얻을 수 있는 평안을 간절히 바라면서도 인위적인 세속의 삶에서 쉽게 벗어나기 어려운 현대인의 삶을 성찰적 시선을 통해 형상화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이 시는 '무욕의 자연과 현실적 욕망 사이의 갈등'을 표현합니다.

 

그럼 이제 전문해석을 통해 학습해보도록 합시다.



오늘도 수고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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