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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시간에 다룰 시 '나리 나리 개나리'에서는 시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봄이라는 계절적 배경을 바탕으로 시상이 전개됩니다. 하지만 내용 자체는 밝지 않는데요 바로 누이의 죽음을 떠올리며 그로 인한 상실감과 슬픔을 표현했기 때문이죠.

부르지 않아도 시간이 되면 돌아오는 생명력 넘치는 봄과 누이를 잃은 화자의 상실감이 대조되며 슬픔을 느끼게 하는 '시 나리 나리 개나리' 지금부터 전문을 읽고 해석을 해보도록 합시다.


누이여

또다시 은비늘 더미를 일으켜세우며

시간이 빠르게 이동하였다

어느 날의 잔잔한 어둠이

이파리 하나 피우지 못한 너의 생애를

소리없이 꺽어갔던 그 투명한

기억을 향하여 봄이 왔다

살아 있는 나는 세월을 모른다

네가 가져간 시간과 버리고 간

시간들의 얽힌 영토 속에서

한 뼘의 폭풍도 없이 나는 고요했다

다만 햇덩이 이글거리는 벌판을

맨발로 산보할 때

어김없이 시간은 솟구치며 떨어져

이슬 턴 풀잎새로 엉겅퀴 바늘을

살라주었다

봄은 살아 있지 않은 것은 묻지 않는다

떠다니는 내 기억의 얼음장마다

부르지 않아도 뜨거운 안개가 쌓일 뿐이다

잠글 수 없는 것이 어디 시간뿐이랴

아아, 하나의 작은 죽음이 얼마나 큰 죽음들을 거느리는가

나리 나리 개나리

네가 두들릴 곳 하나 없는 거리

봄은 또다시 접혔던 꽃술을 펴고

찬물로 눈을 헹구며 유령처럼 나는 꽃을 꺽는다

- 기형도, 「나리 나리 개나리」


시는 화자의 독백으로 진행됩니다. 시의 처음에 '누이여'라며 구체적인 화자가 표현되지만 누이에게 말을 건내고 있지는 않습니다. 화자는 이미 누이를 잃은 상황입니다. 누이는 '이파리 하나 피우지 못한 너의 생애를 소리없이 꺽어갔던'이라는 시구를 봤을 때 이른 나리에 갑작스런 사고로 죽은 것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이런 누이의 죽음과 별개로 모든 생명이 약동하는 봄은 다시 찾아 옵니다.

화자는 누이를 잃은 슬픔 속에서 살아있지만 세월을 모르며 살아있지 않은 사람처럼 살고 있습니다. 누이가 살아있던 기억과 그 후 시간이 섞인 공간 속에서 멈춰져 있죠. 이런 슬픔 속에서 밖으로 나서면 맨발로 햇덩이 이글거리는 벌판을 산보하듯 고통을 느낄 뿐입니다. 그래도 시간은 흐르죠.

봄은 살아있지 않은 것들은 묻지 않습니다. 떠다니는 누이의 기억은 화자 안에서 살아있기에 기억의 얼음장마다 뜨거운 안개로 쌓이고 화자의 의지와 상관없이 슬픔도 쌓이게 됩니다. 이렇게 멈출 수 없는 건 시간뿐이 아니라 슬픔도 있기에 누이의 죽음은 더 큰 슬픔을 불러냅니다.

누이가 죽은 이후에도 봄이 오고 꽃은 피지만 화자는 슬픔 속에서 누이의 죽음과 상관없이 생명력을 피우는 봄을 받아드릴 수 없기에 유령처럼 꽃을 꺽어버리며 시는 마무리됩니다.

이렇게 이 시는 '봄'이라는 계절적 배경을 중심으로 누이의 죽음을 떠올리며 그로 인한 상실감과 슬픔을 표현하는데요. 이제 전문해석을 통해 학습을 마무리해보도록 합시다.



오늘도 수고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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