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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다룰 시 '남신의주 유동 박씨봉방'은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상실의 체험과 극복의지를 담담하게 그려내어 강한 감동을 주는 시입니다. 제 #최애시 중에 하나이기도 한데요. 백석의 또다른 시 '흰 바람벽이 있어'와 함께 보면 감동이 두배이기도 합니다. 두 시에서 시인이 말하는 바는 결국 같으니까요.

 

시의 내용을 요약하면 이렇습니다.

나는 아내도, 아내와 같이 살던 집도, 가족과도 이별한 채로 객지를 유랑하게 되었다. 내 고향을 떠나 유랑하며 많은 시련을 겪었고, 어느 목수네 집(남신의주 유동의 박씨네)에 샛방살이를 하게 되었다. 여기서 나는 혼자서 생각하며 무기력한 시간을 보내고 슬프고 어리석은 내 삶에 대해 생각하고 반성하였다. 그럴 때면 내 가슴에 슬픔이 가득차곤 했다. 그러던 중에 나는 위를 바라보기 시작했다. 고개를 들고 생각했다. 나에게 오늘 시련은 내 운명이며 나를 이끄는 무언가에 의해 정해진 것이라고 이를 내가 이겨낼 수있다고....그리고 저녁 화로 앞에서 지나온 삶을 반성하며 가끔 눈보라가 치더라도 늘 곧고 정한 갈매나무를 생각하며 나도 저렇게 되야겠다고 생각하는 것이었다....이따금씩 시련이 있더나도 늘 곧고 정한 갈매나무처럼 나도 저렇게...

이런 내용을 담담하게 산문의 형식으로 풀어서 인상깊게 풀어낸 시가 이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입니다. 이 시를 해석할 때는 표현법에 신경쓰기보다는 화자의 정서변화와 인식에 신경을 써야 합니다. 신경쓸 부분은

1. 화자의 정서가 전환되는 부분을 찾는 것입니다. 시에서 중간부분 '그러나'이후 화자의 현실 인식 태도가 바뀝니다. 전문을 읽을 때 이 부분부터 변하는 행동과 생각에 주목하면 좋습니다.

2. 자신에게 주어진 시련을 인식하는 '운명론적 태도'에 주목하는 것입니다. '운명론적 태도'를 가지게 되면 자신에게 주어진 시련을 담담하게 받아들이게 되고 이를 이겨낼 수 있는 태도를 지니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 시에서 보이는 화자의 태도가 바로 그렇습니다.(이는 위에서 언급한 흰 바람벽이 있어와 같습니다.)

그럼 전문을 읽고 전문해석을 통해 학습을 마무리해보도록 합시다:)

 


어느 사이에 나는 아내도 없고, 또,

아내와 같이 살던 집도 없어지고,

그리고 살뜰한 부모며 동생들과도 멀리 떨어져서,

그 어느 바람 세인 쓸쓸한 거리 끝에 헤매이었다.

바로 날도 저물어서,

바람은 더욱 세게 불고, 추위는 점점 더해 오는데,

나는 어느 목수(木手)네 집 헌 삭을 깐,

한 방에 들어서 쥔을 붙이었다.

이리하여 나는 이 습내 나는 춥고, 누긋한 방에서,

낮이나 밤이나 나는 나 혼자도 너무 많은 것 같이 생각하며,

딜옹배기에 북덕불이라도 담겨 오면,

이것을 안고 손을 쬐며 재 우에 뜻 없이 글자를 쓰기도 하며,

또 문밖에 나가지두 않구 자리에 누어서,

머리에 손깍지 베개를 하고 굴기도 하면서,

나는 내 슬픔이며 어리석음이며를 소처럼 연하게 쌔김질하는 것이었다.

내 가슴이 꽉 메여 올 적이며,

내 눈에 뜨거운 것이 핑 괴일 적이며,

또 내 스스로 화끈 낯이 붉도록 부끄러울 적이며,

나는 내 슬픔과 어리석음에 눌리어 죽을 수밖에 없는 것을 느끼는 것이었다.

그러나 잠시 뒤에 나는 고개를 들어,

허연 문창을 바라보든가 또 눈을 떠서 높은 천정을 쳐다보는 것인데,

이때 나는 내 뜻이며 힘으로, 나를 이끌어가는 것이 힘든 일인 것을 생각하고,

이것들보다 더 크고, 높은 것이 있어서, 나를 내 마음대로 굴려 가는 것을 생각하는 것인데,

이렇게 하여 여러 날이 지나는 동안에,

내 어지러운 마음에는 슬픔이며, 한탄이며, 가라앉을 것은 차츰 앙금이 되어 가라앉고,

외로운 생각만이 드는 때쯤 해서는,

더러 나줏손에 쌀랑쌀랑 싸락눈이 와서 문창을 치기도 하는 때도 있는데,

나는 이런 저녁에는 화로를 더욱 다가 끼며, 무릎을 꿇어 보며,

어니 먼 산 뒷옆에 바우 섶에 따로 외로이 서서,

어두어 오는데 하이야니 눈을 맞을, 그 마른 잎새에는,

쌀랑쌀랑 소리도 나며 눈을 맞을,

그 드물다는 굳고 정한 갈매나무라는 나무를 생각하는 것이었다.

 

- 백석,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

 

오늘도 수고하셨습니다:)

우리도 늘 시련이 있을 수 있겠지만 이겨낼 수 있는 힘을 지니고 있으니 파이팅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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